2018. 12. 28. 00:01ㆍ여 행
까만 새벽 집을 나와 오전 6시 25분 첫차를 타곤, 진주로 향한다.
진주터미널에서 라면에 김밥 한줄 먹고, 오전 8시 중산리행 버스타고 지리산 간다.
오늘, 내일 지리산은 영하 5도, 풍속 10으로 지리산 다울 예정이란다.
덕분에 폴라폴리스, 자켓, 다운점퍼에 먹을것까지 더해지니 무게는 백패킹 배낭처럼 무거워져서,
침낭과 매트리스는 빼고 왔다.
오전 9시 10분 중산리 버스터미널 도착. 30분동안 탐방안내소까지 걸어가야 한다.
지리산을 올랐던 시간보다, 중산리터미널에서 탐방안내소까지 걸으며 흘린 땀이 더 많았다.
워낙 포근해서 폴라폴리스며, 외투까지 다 벗곤, 기모티셔츠에 자켓만 입고 갔는데도 땀 범벅.
탐방안내소에 물어보니 정상엔 눈이 없다고 했다. 그랬다. 정상엔 눈이 없었다.
나의 질문이 많이 잘못 되었음을 천왕봉에서 느끼게 된다.
천왕봉에서 장터목으로 내려설때 결빙구간이 있는지, 아이젠이 필요한지를 물어 보았어야 했다.
다행히 아이젠을 챙겨가서 다행이지, 안 챙겨갔으면 무사귀환 못했을듯.
친구 말처럼 언제나 그렇듯, 겨울산엔 눈이 있고 없고를 떠나 항상 아이젠이 필요하다.
오전 9시 50분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오르기 시작.
욕이 나올만큼 오르막인 중산리구간.
오후 1시 로타리대피소엔 아무도 없다.
점심 대신으로 바나나와 커피, 부담스럽지 않게 먹을수 있은 것은 죄다 먹어본다.
중산리 탐방안내센터에서부터 기모티셔츠만 입어도 될 정도로 포근한 날이다.
오후 3시 30분 천왕봉 아래 결빙구간 만나다.
몇해전인가. 이빨이 몽빵 빠지는 꿈을 꾸고선 지리산 중산리서 천왕봉을 오르다가 딱, 이 결빙구간에서 아이젠을 하지 않고 걷다가, 미끄러져서 낭떠러지로 굴러 갈뻔했다.
그늘에 항상 결빙구간이 있는 곳이 있는데, 올해는 없나.. 하면서 걷다가 그 구간을 만나고선 놀라서, 아이젠 꺼낸후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 800미터 지점부터 300미터 구간까지 결빙구간이 나타나고 있다.
오르는 길이라도 아이젠을 꼭 챙기세요.
오후 4시 천왕봉을 코 앞에 두고.
지리산에 오면서도 오늘처럼 맑은 날이 있었던가 싶다.
도시는 미세먼지로 몸살이지만, 지리산 강력한 바람때문인지 사방이 푸르기만 하다.
오후 4시 30분 지리산 천왕봉 도착.
오전 10시부터 산행을 시작해서 말도 안되는 시간에 도착했지만.
버스타고 와선 지리산 천왕봉에 제일 빨리 도착한 시간이지 않나 싶다.
오전보다는 지금이 바람이 덜 분는것 같다.
천왕봉아래서부터 같이 왔던 '지민이네'에게 인증샷을 부탁한다.
오늘은 지리산 답지 않게 칼바람 아니지만. 이 시간에만 아니었건 걸로.
제석봉 칼바람에 칼놀.
오히려 저녁엔 가스층이 생기는듯 했지만, 오후엔 바람이 불어 주변이 놀라울 정도로 깨끗한 날씨를 보여주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장터목 방향. 돌계단 경사부분에 결빙구간 있으니 조심하세요.
오후 5시 16분 제석봉
해가 금방 질터인데, 헤드랜턴을 꺼내야 하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제석봉 일몰에 물들어 간다.
내일 세석대피소에서 오전 11시 점심 약속이 있다.
다시 천왕봉에 갔다가 세석으로 갈 시간이 안될거 같아, 일출 같은 제석봉 일몰에 취해본다.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워 결국 친구에게 전화를 걸다가, 사진도 보내본다.
되돌릴수 없는 지리산 제석봉. 오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누구와도 나누고 싶다.
오후 5시 30분 장터목대피소
장터목대피소엔 물어 얼어서, 한군데서만 물이 쫄쫄 나온다.
저녁 먹기 전에 한번, 저녁 먹은후에 한번 총 2번 물 뜨러 갔다왔다.
오후 6시 20분 장터목대피소 취사장
물 뜨러간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와 아내
물이 쫄쫄 나오던데. 4명이서 라면을 끓여 먹을려면 한참 걸릴텐데 라는 생각을 하던 참인데.
아이는 '우리만 고기 없어'라며 보지 않아도 우울한 표정을 짓었을 것이다.
400그람이나 되니 안그래도 양이 많아 나눠 먹을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잘되었다.
목심바베큐를 한판 구워 아빠를 기다리는 가족에게 한판 먼저 양보한다.
나도 어서 구워 먹어야지.
천왕봉에서 인증샷을 찍어 주셨던 지민이네가 음식을 나눠 주시겠다고 하시지만,
손사레를 로보트처럼 흔들어 댓던것 같다.
내가 가져온 음식이 딱 맞아서 음식을 받으면 음식물 쓰레기가 분명 나올듯하여 어쩔수 없이 사양한다.
목심바베큐 두판에 미역국 끓여서 햇반 반쯤 먹으니 배가 부르다.
옆에서 튀김같은 갈치구이로 인해 비린하지만 열심히 요리중인 여인네가 있다.
디팩은 취사장에 두곤 가스와 물티슈, 생수만 가지곤 1호실로 자러간다.
오후 8시 소등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오늘 새벽 5시에 일어나긴 했지만 잠이 절대 오지 않는 시간이다.
복도에 앉아 넷플릭스 '버드박스' 산드라블록 영화 한편보곤, 오후 11시 자러간다.
오늘은 평일이라 예약자가 많지 않다.
두세자리씩 건너 한명씩 잔다.
장터목대피소 1호실엔 라디에이터만으로 난방이 되는데,
생각해보니 전에도 라디에이터만으로 난방되는 곳의 2층은 추웠던 기억이 있다.
비상구 불빛으로 방해를 받긴 했지만, 1층에서 따뜻하지도 않고 춥지도 않게 잘 잤다.
장터목대피소 입구에 놓인 트리.
지리산 곳곳에서 보이는 구상나무가 모두 크리스마스를 연상케한다.
오전 7시 29분 장터목대피소 일출
새벽 4시부터 산행을 할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오늘 세석대피소에서 11시 점심약속이 있어 늦장을 부려본다.
오전 6시 눈을 뜨니 사람이 별로 없다. 다들 일출 보러 떠나신듯 하다.
오전 7시쯤 일어나선 미역국에 밥을 먹곤, 오전 8시 10분 세석대피소로 향해 출발한다.
장터목 - 세석구간은 뽀득뽀득 깨끗한 눈을 밟으며 산행할수 있다.
오전 8시 40분 연화봉을 지나 내려선다.
세석에서 오전 11시 점심약속이 있는것도 있지만.
연화선경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가는 찬바람을 맞아야 지리산 온 느낌이 난다.
어제 장터목에서 만난 여인네는 유암폭포를 지나 장터목으로 바로 올라와선,
다음날 천왕봉을 넘어 중산리로 내려선다고 했다.
아이젠이 없으면 결빙구간 통과하기가 힘들거 같아 어제 저녁엔 몇마디 나누었더니,
유암폭포로 올라와 연화선경까지만 걸어 왔었다고 했다.
연화선경말에 더이상 말하지 않아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 뽀드득 눈 밟으며 걷는 연화선경을 어디에 비유할꼬.
오르막을 오르는 이들을 위해 한쪽으로 비켜서기를 여러번.
맞바람을 피해 가푼 숨을 몰아쉬는 대게 어떤이는 아프냐고 물어오기도 한다.
'올라 오시라고. 맞바람이라서요' 라고 나는 배려심 뚝뚝 흘리며 말했지만,
투박한 경상도 말에 놀랐을라나.. 라고 지금 생각해본다.
오전 10시 10분 촛대봉
장터목에서 세서구간에선 기모티셔츠 위에 자켓을 입곤 계속 걸어왔다.
지퍼를 내렸다가 올렸다가를 반복할때쯤 촛대봉 찬바람을 맞으니, 천왕봉이 눈에 들어온다.
지리산에 한두번 온것이 아니었는데, 저렇게 높은 천왕봉을 예전엔 왜 몰랐을꼬.
늘 거북이 산행이라 옆에 사람이 없어 물어보지 않아서인가.
오전 11시 세석에서 점심약속이지만, 일찍 도착해서 물도 뜨고, 찌개라도 끓일 참이었는데,
세석대피소에 채 내려서기 전에 친구를 만난다.
세석대피소 바로아래 식수장은 얼었지만, 거림방향으로 쬐금더 걸어 내려가면 임시식수장엔 물 펑펑 나오고 있다.
소청대피소처럼 카페 같은 출입문으로 바뀐 취사장.
취사장 안에는 고기집 후드시설을 딱. 깜짝 놀랄거에요.
포근해서 밖에서 점심 먹으려다가 작은바람에 놀라 안으로 피신합니다.
친구가 미리 씻어온 쌀로 밥을 하곤,
장터목대피소에서 하루 묵힌 소세지 많이 썰어 넣곤, 김치찌개를 끓이다가, 라면도 하나 넣어서 부대찌개 만들어요.
후라이팬이 작기도하고, 너비아니가 크기도 하고.
배부른 세석의 크리스마스 점심이 지나가고 있다.
3시간 10분쯤 걸어, 세석에서 거림까지 6km 내려선다.
아이젠하고 내려서다가, 내리막에 커다란 결빙지역 바위 지나선 아이젠 빼고 가면 좋아요.
오늘도 까만 새벽 출발 지리산
다리 쥐난 지민이아빠
칼바람 시원찮은 천왕봉
일출 같은 일몰이 있는 제석봉
뽀드득 눈 밟을수 있는 장터목-세석구간
결빙구간이 곳곳에 있으니 아이젠을 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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