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지리산

2009. 12. 9. 23:40여 행



일요일날 비소식이 있었지만,
토요일 별도 뜨고 달도 떠서, 참으로 말짱했던 하늘
비가 온다는 장터목대피소, 제석봉, 천왕봉에는 눈이 왔고,
유암폭포 아래로는 비가 내렸다

설마 아이젠이 필요할까 ? 반문할 필요도 없이, 아이젠을 필요했다
얼음이 언 상태라면 겨울산에서 아이젠이 꼭 필요하다
좀더 과장해서 겨울산에서 아이젠은 생명줄이다
다행히 눈이 쌓이는 중이라 크게 아이젠은 필요치 않았지만,
눈과 비가 섞이는 구간은 돌과 나무뿌리 모두 스펀지 마냥 비를 흠뻑 머금어
미끄럼틀을 타듯 4번이나 나무줄기와 밧줄에 매달려 미끄러 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단지 미끄러지기만 하다면 다행히지만, 부상으로 이어지면 내려갈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것에 신경쓰자니, 풍경이 너무 아깝고 해서
카메라를 목에 걸어 윗옷 안에 감춰 비를 피하게 했지만
꺼내어 풍경을 담으러 할때마다 습기가 차서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몇장 담을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카메라도 비를 흠뻑 머금어
젖은 장갑으로 카메라 렌즈를 대충 딱아 가며 담아야 했던 풍경은 오묘하게 남겨 졌다






아직은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듯한 지리산
유암폭포 아래 / 칼바위 2.4키로 / 중산리 3.7키로를 남겨 두고 있다







눈은 싸락눈으로 다시 진눈개비로 곧 비로 바뀌고 있다
눈 -> 싸락눈 -> 진눈개비 ->비
나의 위치도 천미터 아래로 쭉쭉 내려서고 있다





 

비를 머금은 렌즈를 통해
비를 피해 눈을 피해 나의 눈도 찡긋. 잠시 담고 말려다가
조급하던 맘을 누그러 뜨리고 고개를 든다
빰을 타고 내리는 눈과 비는 가을에서 겨울로 향하는 긴 터널인 지리산을 관통하고 있다





 

지리산의 계절이 관통되는 풍경을 각인시키듯
내 눈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내 몸 위로 눈은 비로 변해 무게를 더하고 있었고,
등산화는 버적버적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기분은 아주 좋았다

이 순간 혼자이기에
때론 산의 감동은 더 강하게 와닿기도 한다





 

앙상하게 말라 버려서,
산을 오를때는 눈에 들어 오지도 않던 풍경이
비를 한껏 머금어 마지막 가을을 뽐낸다

앙상하게 말랐던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비를 머금은 지리산 가을풍경은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설악산의 단풍이 이 가을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아쉬워 했던 마음을 지리산은 외면하지 않았다




 

가을이 있기에 첡계단을 오르는 것도 더이상 고역이 아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 양쪽 철계단을 잡았던 탓에
장갑을 낀채 주먹을 쥐면, 가을비가 장갑에서 주르륵 떨어지고
 비도 계속 오지만, 저체온증이 올만큼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때론 살기 위해 끝없이 움직여야 한다





 

지리산 계곡도 단풍과 함께 가을비를 맞는다
어쩜 저리도 신기하고 비가 오는줄 알고, 메마른 잎사귀를 내밀고 있는 걸까
휑하게 없어졌던 가을이 비와 함께 지리산에 돌와왔다




 

비가 올때는 돌, 나무뿌리를 조심해야 한다
미끄러 지기라도 한다면 부상으로 이어질수 있기 때문이다
밧줄이 없다면 어디가 등산로인지 가늠하기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계곡물에 풍덩 들어가서도 안된다
벌칙금 수십만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석봉에 눈이 왔다는게 믿어지지 않을만큼, 지리산 계곡에는 비가 오고 있다
가을이 내리고 있다




 

중산리 관리사무소 위의 법계교

비가 내리는 산자락을 넘어, 저 구름은 제석봉까지 눈을 날라다 줄 것이다
2시간쯤 눈을 맞고 걸었고, 또 2시간쯤은 비를 맞으며 걸었다
윗옷은 비에 흠뻑 젖었고, 장갑낀 손은 물에 젖어 퉁퉁 불었다

다시 20~30분을 걸어 중산리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추위와의 싸움이겠지만
내려온 수시간을 생각하면 그리 외롭지는 않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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