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장터목대피소 -> 중산리

2009. 12. 16. 21:20여 행








일요일 아침, 장터목대피소를 나왔을때 거짓말같은 풍경에 탄성을 질렀다
믿어지지 않는 풍경에 와 ~~ 하고는 짧은 외침만을 반복적으로 외쳤다
외투에 부딪혀 탁탁 소리를 내는 싸락눈이다

내가 잠든 사이에 지리산은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일요일 비 소식이 있었지만, 전날밤 하늘은 별도 달도 포근하게 떠 있어 안심했지만
제석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일어났다가, 하얀 세상을 보고는 늦잠을 청했다
10월 설악산 이후에 첫산행이라 그런지 온몸이 뻐근하고 힘이 안든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새벽녘 반쯤은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떠나는듯 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천왕봉을 넘어 중산리로 행해서 갔다
일출을 못볼바에야 서두를 필요는 없다. 느즈막히 일어나 제석봉으로 향한다
해가 떴다면 무지개빛으로 변했을 제석봉은 여름날 분수빛 색으로 아침을 맞는다
싸락싸락 내리던 눈은 제법 굵어졌고, 어디가 바위이고 어디가 땅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제석봉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돌계단이라 눈이 온다면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이런 날에 산을 오를때 만큼이나 내려갈땐 아이젠이 필요하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중산리까지 5.3키로
아마득한 거리이지만, 집에 가려면 무조건 내려가야 하는 거리이다






장터목대피소를 출발해서 30여분 내려왔을까
뒤돌아 뒤돌아 본다
눈 내리는 지리산을 두고 가기가 너무도 아쉽다
몇계단 내려와서는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나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장터목대피소 -> 1키로 아래 지점
오를때
는 눈이 없었지만 돌길이라 2시간 걸려서 올랐던 길을
내려올때는 눈이 있지만 1시간 만에 내려왔다
대피소 아래 식수장쯤 가면 장터목 대피소 발전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걸을때마다 발전기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발전기 소리가 들린다면 다 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내가 발전기 소리를 이렇게 원하게 될줄이야. 살고자 하는 본능이다





중산리까지 4.3키로 남았다
눈이 내려요
음악소리보다 더 아름다운건 지리산에 눈 내리는 소리일 것이다







몇개 안되는 요런 철계단은 귀여운 애교 수준이다
중산리 방향 유암폭포를 향해 고고씽 ~






어제 오를때 보았던 나무들은, 겨울나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앙상했던 나무들이다
눈이 내리는 지금 보는 겨울나무들은, 눈이 내려 또 다른 겨울나무의 풍경을 자아낸다
앙상함도은 겨울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 앙상함 마저도 지리산은 품어 눈을 내리게 한다






눈이 내린다
나무터널을 벗어나자 눈이 내게로 내린다
하얗고 부연 하늘은 어디가 끝인지도 보이지 않고 하얀 눈이 내려 내 얼굴을 감싼다
봉우리 하나가 제 몸을 덮히고는, 내게도 겨울을 내려주고 있다
지리산에 눈이 내린다






산을 오르며 보았던 단풍잎은 바스락 소리가 들릴 정도로 메말라 있더니,
눈을 맞아 흥건하게 물을 머금었다
 늦가을 첫눈이 내린듯이 단풍잎이 살아나고 있다
겨울인가 했더니, 잠들었던 가을이 다시 깨어났다
설악산 단풍만 보고 지난 가을이 아까워, 수십번 그 가을을 곱씹었더니
지리산이 내게 눈과 함께 가을을 가져다 준다
겨우 몇명만이 나를 지나 산을 내려갈뿐
이 순간 혼자라는 것이 아쉽다
지리산 이 풍경을 나만 보는 것이 아까워 미칠 지경이다






유암폭포
1~2월 눈이 쌓였을때 올때는 물이 메마르고, 눈이 내려 꽁꽁 얼어서는 폭포가 있는줄도 몰랐는데
11월에 찾으니 폭포가 있었구나 ...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차가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장터목대피소에서 1.6키로 내려왔고, 2시간 걸렸다
장터목대피소에서 1키로를 내려오는데 1시간이 걸렸는데, 0.6키로를 내려오는데 어떻게 1시간이 걸린거지 ....
설경에 취한 탓인지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칼바위까지 2.4키로 / 중산리까지 3.7키로 남았다





 

눈인지 비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희안하게 내리고 있다
외투가 조금씩 젖어 오는듯 하다
2시간이나 눈을 맞았으니 멀쩡하다면 그것이 이상하리라
옷이 젖어 추워질지도 모르지만, 그 새를 참지 못하고 품에 고이 넣어둔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내 품에서 금새 나온 카메라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해, 눈을 찡그린다
한참을 기다려도 눈을 뜨지 못해, 성질 급한 나는 젖은 장갑으로 대충 두어번 렌즈를 닦는다
웬만하면 기다릴테지만, 내리는 눈에 카메라가 자꾸 젖어지니 걱정이 앞선다

몇해전 하동의 매화꽃을 찾았다가, 내리는 비에 카메라도 나도 속수무책으로 당한적이 있다
한동안 병을 앓듯 카메라는 내게 마음을 열지 않아서 인지, 급한 마음에 대충 으르고 달래 얼근 몇장을 담는다





산을 내려올수록 눈은 비로 변해간다
그리고, 겨울은 온데간데 없고, 지리산은 늦가을 풍경을 만들어 낸다
타버린듯 말라 비틀어진 단풍은 비를 맞아, 겨울을 맞아 지리산 계곡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비가 내릴때는 계단과 돌, 나무뿌리를 조심해야 한다
쉽게 미끄러질수 있고, 큰 부상으로 이어질수 있기 때문이다
계단을 급하게 오르거나,, 내려가는 것은 좋지 않다
본인의 숨소리와 함께 한계단을 올라, 계단을 다 오르거나 내려가서도 종아리나 허벅지가 당기지 않을 정도의 속도가 적당하다
물론, 비좁은 계단에서 내려오거나 오르는 타인이 있다면
빨리 이동하여 양보 하는 센스를 보여야 함은 기본이다






비에 젖은 바윗길은 무섭다
좋은 등산화라고 해도, 빗길에서는 주의를 해야 한다
한발에 중심을 잃으면 다른쪽도 금새 균형을 잃어 다칠수 있다
둔하다 싶을 정도로 밧줄이나 잡을 만한 것에 기대에 조심조심
미끄러지지 않을려고 얼마나 밧줄을 꼭 잡았으면
바윗길을 지나 장갑을 비틀어 자니 빗물이 주룩 하고는 흘러 내린다
호 ~ 아리고 손 시리다. 젖은 장갑이라도 얼른 다시 낀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칼바위까지 3시간 30분 걸렸다
칼바위에서 중산리까지 1.3키로 ~ 낮은 돌길이라 크게 무리는 없지만,
온 몸은 비에 젖어 체력이 바닥 나려고 한다


장터목대피소에서 법계교까지 4시간 걸렸다
중산리 주차장까지는 다시 20분을 더 걸어 가야 한다






장터목대피소 부근은 눈이 내렸는데
아래쪽은 비가 내려 구름이 산능성이를 감싸 돈다
비가 계속 내리지만 마지막 인증을 남기듯
빗속에 카메라와 내가 젖어들며 산행은 끝나 가고 있었다

다행히 중산리주차장에서 진주로 향하는 버스로 바로 있어
따뜻한 히터로 몸을 녹이고는, 버스에서 내리는 한기가 들듯 몸시도 추어졌다
오후 4시인데 점심도 거르자니 섭섭한 마음에
진주터미널에서 라면을 한그릇 사먹고 집으로 향한다
1시간 남짓이면 오를 거리를, 남해고속도로의 정체로 인해 3시간 넘게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내 집이 얼마나 소종한지 다시 한번 깨달으며 이불속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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