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22. 17:23ㆍ여 행
기차여행 북천역에는 지금 무슨 일이 ?
논에서 벼는 누렇게 익어가고,
감나무의 감은 이유도 없이 툭툭 떨어졌다
겨우 일주일에 한번 하는 감나무 밭에 풀을 뽑는 일에도 지칠쯤
나는 일상탈출을 감행했다
당신과 내가 가을여행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가을날
사전답사를 위해 이른 아침 기차를 탔다
코레일(철도청) 카드가 있었지만,
예약 하는걸 깜빡하는 바람에 매진이라는 말을 듣고는
입석표를 끊었다
경남 마산에서 하동 북천역까지는 대략 1시간 50여분 가야 되는데 ..
기차를 타자마자 다리가 아파 오는듯 하다
출퇴근이나 시장오는 어미들을 위한 기차처럼 생긴, 자그마한 3칸짜리 기차였다
마산역에서 타는 사람보다는 벌써 타고 오는 이들로 빼곡히 앉아 있었다
3호칸 커다란 통유리 벽에 종이장처럼 붙어 서있었다
늠름한 젊은승과 마산 새벽시장을 다녀오는 어미 두어명, 벌초 하러 간다는 중년 남성
내리고 타는 이들보다는 처음부터 타고 왔던 이들이 더 많았다
함안, 문산역을 지나니 어미들은 기차에서 내렸다
기차가 조금씩 한산해지니 그제서야 내가 꽃을 보러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쯤해서 다리가 저려오고 창밖을 보는것도 심심해져 오고 있었다
진주역을 지나 남강변 물줄기를 따라가 30여분 가면 하동 북천역이다
가을볕이 좋다 못해 뜨거운 날이었다
모자나 양산을 준비 하지 않는 나는 서너시간 후에 머리밑이 아주 빨갛게 변하였다
요즘 같은 날에는 모자나 양산을 꼭 써야 한다는 말은 거듭 강조하고 싶다
얼굴과 목은 여름날 못지 않게 뻘겋게 변해서, 병원에 가야 되나 ... 하고 생각 했었지만
자고 나니 다행스럽게도 금새 가라 앉았다
그 약효는 바로 알콜이다 ㅎ
되돌아갈 기차표의 시각까지 3시간이 넘게 남았다
북천역에 도착할쯤 북천역 오른쪽에는 코스모스가 보인다
사람들은 웅성 거리며 서로 내리랴, 탄성을 지르랴 바쁘다 바뻐
북천역은 코스모스역으로 역명도 변경하였다
코스모스나 가을에 관련된 노래들은 끊임없이 흘러 나오고 있다
이른 아침에는 나이대 있는 이들이 북천역에 도착하면 옛노래를
오전시간부터는 최신가요를 들려주며, 젊은이들이 발걸음을 잡는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 나만 혼자 온것인가
사진으로 서로를 담는 것도 모자라 하필 내게까지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하다니
난 배낭을 두개나 지고 메고, 한손에는 카메라를 들었다구요
내게 부탁을 하지 마오
난 오늘 양손도 부족하다오
이런 푸념은 속으로만 궁시렁 거릴뿐. 방긋 웃으면 상대의 카메라를 부여 잡는다
그대들의 웃음소리에, 가을을 담는 그대들의 눈을 외면할수 없어서이다
기차역을 조금씩 벗어나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북천역을 벗어 나고 나면 반대편에서 기다리던 기차가 오지는 않을까?
오래전 목소리의 여인네의 가을노래가 발길을 자꾸만 뒤돌아 보게 한다
어느새 한시간 넘게 북천역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다
이곳에서만 있다 가도 좋겠다 ~ 이런 생각이 든다
여름에 사둔 새신발은 뒤꿈치를 까이며 질을 내두었던 것을 신었고
포도도 한송이 씻어 왔겠다. 걸을 준비는 완벽하다
하동 북천역엔 코스모스가 손을 내밀며 같이 걷자고 하는듯 하다
햇빛은 따갑지만, 시원한 바람이 부는 이런 날에는 혼자여도 가을이 한몫을 한다
남들보다 앞서서 마시는 가을 한줌은 약이 될것을 안다
기차여행에서 얻은 에너지로 나는 최소한 한달은 버틸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홍시가 되는 대봉감을 다 따내야 하는 가을까지는 버틸수 있기를.
나는 내 가족이 기다리는 감나무 밭 가을속으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