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피아골에 가을 내려 앉다

2011. 11. 8. 15:39여 행





비가 와도 좋은 가을날에
예전 기억을 더듬어 지리산 피아골로 향한다
가을은 단풍과 추억이 세트처럼 묶이어 기억을 파고든다
혼자도 좋지만, 오늘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이다

남해고속도를 따라 하동을 지나 구례에서 연곡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산자락의 밤은 금새 찾아오고, 기억을 더듬어 예전의 그 민박집도 수월히 찾는다
이제 나를 기다리는건 까만 밤하늘과 솜사탕보다 더 부드러운 송어회 그리고 새색시의 연분홍 볼색과 같은 막걸리와 지글지글 끓는 온돌방이다





그쳤던 비는 다시 내리기를 반복하고, 단풍잎이 떨어질세라 마음을 졸이는 것도 금새이고
피곤했었는지 지글지글 끓는 온돌방에 잠을 청한다
이 밤, 지리산 피아골 단풍보다 더 좋은것은, 송어회와 달달한 먹걸리이다





가을을 느낌에 있어 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어나자 마자 눈을 비비고는 우산을 들고 산책에 나선다
지리산 피아골 단풍이 얼마나 좋았으면, 옆방 여인네는 단풍을 눈요기 삼아 화장중이다





속이 시꺼먼 의자 위에도 단풍은 내려 앉았다
가을비에 나부끼며 살랑거려도 좋고, 시커먼 아스팔트위를 뒤덮혀도 좋다





여인네는 우산도 쓰지 않고, 산책을 다녀온 모양이었다
윗옷을 반쯤 쓰고 가길래 '우산을 빌려 주리?' 물으니
은행나무 옆이 바로 집이라며, 집 안으로 쏙 들어간다
은행나무 한그루를 온통 가진 이 여인네가 부럽다
가을을 온통 가진 이 여인네는 얼마나 좋을까 ....
은행 몇알 구워서 소주 한잔 먹고 싶어지는 가을이다
지리산 피아골에 은행잎도 내려 앉고, 가을도 내려 앉는다





피아골에서 연곡사 방향으로 더 내려선다
비오는 길위엔 낙엽이 젖어들고, 초록빛 여름은 붉은 단풍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리산 피아골을 따라 계곡은 이어지고, 계곡 물소리에 한잎 한잎 가을 단풍은 물들어 가고
한줄기 빗소리에 또 한번 가을은 익어간다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또 한번 얼굴 붉히며 또 한잎 가을빛이다





빗속을 한참 걸고 있을쯤, 같이 온 이들은 라면을 먹고 있노라며 전화가 온다
안그래도 흠뻑 젖었었는데 라면생각이 간절해진다
발길을 재촉하여도, 어쩐 일인지 빨리 걸을수가 없다
이 가을을 간직하고 싶어서인지 내 발은 느림보가 되어간다





지리산 피아골의 이 가을을 보내고 나면
언제 또 올지 몰라 ... 가는 버스를 몇번이고 바라본다
기억 한켠에 또 한번의 피아골 단풍을 묻어둔다

무시무시한 남해고속도로의 막힘이 기다리고 있을테지만
마냥 걱정되지 않는것은 이 가을을 쉬이 보내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